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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튬 주얼리의 여왕 코코 샤넬이 파인 주얼리를 시작하게된 이야기

2015.10.06 19:59
기타 조회 수 3628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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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텀 주얼리? 코스튬 주얼리? 
 
전혀 다른 뜻을 가진 이 두 단어는 발음과 철자의 혼란으로 언론과 주얼리 종사자들 조차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주장과는 다른 차원임을 밝힌다.) 

커스텀 주얼리(custom jewelry)는 ‘주문/맞춤 제작 주얼리’라는 뜻이고, 코스튬 주얼리(costume jewelry)는 ‘비금속(卑金屬, base metal)이나 모조석 등 저가의 재료로 만든 주얼리’를 말한다. 반대로 귀보석과 귀금속으로 만든 고급 주얼리는 ‘파인 주얼리(fine jewelry)’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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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제작을 뜻하는 커스텀 주얼리(custom jewel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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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튬 주얼리(costume jewelry) ⓒ윤성원

 

코스튬 주얼리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24년 프랑스에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이 크리스털 모조 진주로 그 문을 연 덕분이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는 미리엄 해스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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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 진주로 만든 코스튬 주얼리를 착용한 코코 샤넬

 

특정 유행 의상(costume)에 착용하는 주얼리란 의미로 ‘코스튬 주얼리’라 불리기 시작했다.  

샤넬은 주얼리의 가치를 패션성에 두며 코스튬 주얼리의 홍보대사를 자처했다.
미국에서는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대중들이 점차 할리우드 영화로 현실 도피를 하게 된다. 

영화계가 번성하면서 여배우들의 촬영 의상을 위한 액세서리로 화려한 주얼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수순. 정신 없는 영화 현장에서 분실되거나 파손되기 쉬운 주얼리에 값싼 소재를 사용한 것은 현명하고도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게다가 세계 2차 대전은 귀금속의 품귀 현상을 가져와 라인스톤, 니켈, 레진, 가죽, 글라스, 황동 등으로 만든 주얼리의 수요가 증가했고 금도금 기술은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도왔다. 
영화 의상(코스튬)을 장식하는 도구로써 코스튬 주얼리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추종하는 여성들과 함께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샤넬은 거의 한 세기 전에 한낱 모조 보석으로 만든 주얼리를 여성들의 갈망의 대상으로 만든 진정 영리한 사업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샤넬에도 엄연히 고가의 소재로 만든 파인 주얼리가 존재한다. “주얼리는 여성에게 부의 상징이 아닌 아름다움을 위해 존재한다”고 외치던 코스튬 주얼리의 여왕은 언제 어떤 계기로 파인 주얼리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일까?
 
그녀는 당대 유명 인사들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산 자유연애주의자였다. 

연인이자 후원자였던 부호들은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에게 호화로운 상류층의 삶을 안내했으니 그들이 선사한 고급스러운 안목은 결국 그녀의 디자인에 영감을 준 셈이다. 

수많은 연인들 중 오늘은 아르데코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이자 약혼자였던 폴 이리브(Paul Iribe)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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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과 일과 사랑을 함께 한 폴 이리브(Paul Iribe)

 
이리브와 샤넬은 패션 디자이너 폴 푸아레(Paul Poiret)의 소개로 만났다. 그래픽, 텍스타일, 주얼리, 무대, 광고 등 여러 분야에서 증명된 이리브의 재능과 재치 있는 성격은 그녀를 단숨에 사로잡는다. 
 
당시 코스튬 주얼리로 큰 성공을 거둔 샤넬과는 달리 프랑스의 파인 주얼리 업계는 대공황 속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침체된 다이아몬드 산업의 부흥이 절실했던 Paris International Guild of Diamond Merchants는 1932년 샤넬에 SOS를 청한다. ‘코스튬 주얼리의 여왕’에게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을 사용한 ‘파인 주얼리’의 제작을 의뢰하다니…요즘 유행어로 꽤나 ‘웃픈’ 상황이었다. 

샤넬은 연인이자 1911년에 이미 파인 주얼리 컬렉션을 발표했던 이리브의 도움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이렇듯 그녀가 파인 주얼리 무대에 데뷔한 배경에는 다이아몬드 업계를 돕기 위한 명분이 있었다. 


같은 해 11월, 마침내 샤넬은 “비주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 이라는 첫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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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비주 드 디아망” 전시 초대장 ⓒ샤넬(CHANEL)

 

리본, 별, 깃털의 세 가지의 테마로 이루어진 컬렉션은 3줄짜리 리본 다이아몬드 목걸이, 6줄짜리 다이아몬드 꼬메뜨(Comète) 목걸이와 반지, 티아라, 두 개의 펜던트가 달린 405개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으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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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ète necklace (1932) ⓒ샤넬(CHANEL)

 

두 개의 펜던트는 각각 브로치와 팔찌로 변환할 수 있게끔 기능성도 갖췄다. 드비어스의 협찬으로 독특한 커팅과 다양한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사용됐다. 또 숨겨진 잠금 장치와 금속의 발이 보이지 않는 섬세한 ‘인비저블 세팅’은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최대한 뿜을 수 있게 받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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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용 벨벳 케이스가 아닌 마네킹을 활용한 디스플레이는 당시로는 파격적이었다. ⓒ샤넬(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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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는 티아라로도 착용할 수 있었는데 샤넬은 이런 기능적인 면을 좋아했다. ⓒ샤넬(CHANEL)

 

 

 
전시는 파리 생토노레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2주 간 지속됐는데, 엘리트층의 열렬한 호응은 개최 이틀 만에 드비어스의 주가가 20포인트나 오르는 즉각적인 효과로 이어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극적으로 코스튬 주얼리를 장려하더니 돌연 파인 주얼리의 홍보대사가 된 그녀! “파인 주얼리는 가장 작은 부피에서 가장 큰 가치를 드러낼 수 있으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진정성과 진정한 가치를 찾는 본능적 열망이 생겨나기 마련”이라는 새로운 명언을 추가한다. 
 
사실 샤넬 파인 주얼리의 초석이 된 여러 디자인 요소들은 1911년에 이미 이리브에 의해 완성된 것들이다. 

그러나 열정적이고도 생산적이던 두 사람의 관계는 1935년, 테니스를 치던 이리브가 샤넬의 눈앞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항간에는 이리브가 샤넬의 능력을 질투한 나머지 그녀를 파멸시키기 위해 유혹했다는 루머도 있었으나, 그와의 사랑이 샤넬 파인 주얼리의 DNA가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샤넬은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의 파인 주얼리 디자이너인 풀코 디 베르두라(Fulco Di Verdura)와 협업하여 몰타 십자가(Maltese Cross) 팔찌로 에나멜 주얼리의 부활을 대성공으로 이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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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파인 주얼리 라인. 베르두라와 협업한 Maltese Cross Cuff

 

자의식이 강해 평생 남성의 특권에 도전한 샤넬도 사랑하는 남성에겐 순종의 모습을 보였고, 또 그들을 깊이 이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의 끝이 아름다운 적은 없기에 그녀는 매번 상처로 힘겨워했다. 동시에 그녀의 일과 인생은 더욱 단단히 다져져 패션계의 전설이 되었으니 사랑이야말로 그녀의 이름을 빛나게 한 에너지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이리브와의 추억이 담긴 “비주 드 디아망” 컬렉션은 1993년 칼 라거펠드에 의해 재탄생됐고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재해석되며 뜨거운 열정이 담긴 그들의 시간을 기리고 있다

 

 

출처 - Insight.co.kr(윤성원)

댓글 수 1

  • profile
    (주)보석나라 2015.11.06 00:23
    코코샤넬의 코스튬주얼리부터 파인 주얼리까지, 그녀는 정말 아름답고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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