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과 티파니 옐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194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신분상승을 꿈꾸는,
조금은 허황된 여주인공 ‘홀리’가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로맨틱 드라마이다.
아마도 장년층이라면 세기적 배우라고 일컬었던 오드리 헵번의 청순한 이미지가 돋아나는 영화와 함께,
영화보다 더 유명해진 주제가 〈문 리버(Moon river)〉란 달콤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를 기억할 것이다.
이 노래는 비록 영화가 낯선 젊은이들이라도 처음 몇 소절의 멜로디는 다 흥얼거릴 정도로 유명하다.
영화 속의 그녀는 부자를 만나 보석가게 ‘티파니’에서 아침을 먹고,
보석으로 치장할 수 있는 부유하고 우아한 모습을 꿈꾸며 사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이다.
그 영화 때문에 티파니란 보석상의 이미지가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미국의 상술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영화 속의 오드리 헵번과 티파니 옐로 다이아몬드가 어우러진 사진 한 장은
영화와 티파니 보석상을 알리는 훌륭한 광고가 되었다.
세계적인 이름을 가진 다른 다이아몬드와는 달리 이 티파니 옐로(Tiffany Yellow Diamond)는 출생지가 확실하지 않다.
대략 1877~1878년 사이에 남아프리카의 프랑스 계열 광산에서 채취된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카나리아란 새가 갖는 아름답고 신선한 황색을 가지고 있어 그 색을 카나리아 황색이라고 하며,
가공되기 이전 원석의 크기는 287.42캐럿이었다.
이 원석은 파리로 보내졌으며, 그다음 원석의 운명은 미국 티파니에서 일하고 있던 전설적인 보석학자인 쿤즈를 만나면서
전적으로 바뀐다. 1878년 쿤즈는 거의 일년 가까이 돌을 관찰한 후 128.54캐럿의 쿠션 커트1)로 그 돌을 다듬었다.
그 크기는 폭 27mm, 길이 28.25mm 그리고 두께는 22.2mm였다. 쿠션 커트로 세공된
카나리아 황색의 이 다이아몬드는 크라운에 40면, 퍼빌리언에 48면 그리고 테이블과 큘렛을 포함하여
모두 90개의 면을 갖는 티파니 옐로로 변신하였다.
다른 보석들도 그러하지만,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은 이 돌 안에서 계산된 통로로 빛을 진행시켜
최상의 광휘를 갖는 보석으로 만들었다.
특히 보석 전문가들은 티파니 옐로가 인공적인 불빛 아래에서 더 뛰어난 광휘를 보인다고 평가한다.
세공된 이 보석은 파리의 티파니사가 1만8천 달러에 구입하여 1879년 미국으로 수출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남아프리카에서 여러 개의 황색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있어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다.
| 2012,티파니앤코 브랜드창립1752주념기념 네크리스 |티파니 다이아몬드 커팅 스케치
그러나 이 다이아몬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의외로 동양인이었다.
1896년 청나라 말기 직예총독 겸 북양통상사무대신이라는 긴직함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이홍장(李鴻章)이 미국을 방문하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 그랜트가 “세계에는 세 명의 위대한 지도자, 글래드스톤, 비스마르크와 이홍장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위대한 이는 이홍장이다”라고 평가한 그가 미국을 방문하여 티파니 옐로를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이 보석은 유명세를 타고 티파니 뉴욕에 거의 수십 년간 전시되면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관람을 하였다.
더욱 유명해진 티파니 옐로는 미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전시회를 가졌으며,
1971년에는 킴벌리 광산(제일 유명한 다이아몬드 광산)의 100주년 기념을 위하여 남아프리카까지 다녀왔다.
2008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티파니 보석전’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티파니사는 1951년 이 보석을 팔려고 하였으나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으며,
1972년 〈뉴욕타임스〉에 이를 500만 달러에 판다고 광고를 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또 거래가 이루어지 않았다.
현재 이 돌의 가치는 그보다는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색의 돌 하나가.
(출처: Tiffany&Co. 보석,보석광물의 세계,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