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라 적고 사랑이라 부른다.
돌이켜보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쏟아져 가는 세월 붙잡아 두고자 인내해보고,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기에.
저 빠름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짐짓 달려도 보았지만, 시간은 항상 내 앞에 있었다. 커기는 것도 모른 체
멍 하니 바라다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바라보니 나는 어느덧 무능력한 어른이가 되어있었다.
꾸깃꾸깃해진 종이는 아무리 펴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건강했던 나무는 알고 있었을까?
늠름한 자태를 뽐내던 자신이 한낱 전단지의 신세가 되어버릴 줄. 아마 몰랐을 테다. 흔하고 뻔한 존재가 되어
웅크린 채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마음. 구겨져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마음.
인생에 유예기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충분히 삶에 대해 고민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돌아볼 수 있는 기간.
욕심이겠지? 스펙을 쌓지 않으면 시간낭비라는 인식 아래 딱히 한 것도 없이 쫓기고 있는데. 곰곰히 따져보면
하루의 절반은 조바심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보통 '그렇다더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보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만 기다려준다면.
처음 일을 시작했을때 나에게 주어진 양이 많다는 건 인정의 의미 인줄로만 알았다.
비록 힘들지만 다 소화해내며, 성과를 올릴 수 있다면, 인정받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실제 일에 익숙해지며 성과가 꽤 올랐다. 하지만 늘어나는 성과만큼 욕심도 늘었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며 주저하지 않기를 강요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니 내 주변에는 일밖에 남질 않았다. 일은 일을 불렀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면 또 다른 일이 나타났다. 점차 고립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실을 알고 주변을 둘러 보았을 땐 다시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왈칵 쏟아지는 비에 온 몸이 젖는다. 세상을 바라보던 따스한 두 눈에 빗물이 고인다.
얼마나 많은 비를 맞으면 담담히 견뎌낼 수 있을까?
비가 내린다. 타고 내리는 빗물을 따라가다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어머니는 참 묘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어린 날 내 눈엔 하늘이 참 맑아 뛰어 놀기에 좋은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대뜸 우산을 가져가라고 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손엔 실내화 주머니를 들어야 했기 때문에
귀찮은 나머지 그냥 등교한 날. 그런날엔 꼭 비가 내렸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몇 번은 실내화 주머니를
머리위에 들고 뛰었던 것 같다. 몇 번은 오는 비를 맞으며 걸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번,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달리다가 문득고개를 들었을 때, 우산을 쓴 어머니가 계셨다.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담은 미소와 함께.
기억은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출근길로 이어졌다. 고되진 않으셨을까? 2년밖에 일하지 않은 나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2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한 아버지라는 이름은 숭고하게만 느껴진다.
집을 등지고 회사로 나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늘 외로워 보였던 것 같다. 그땐 참 눈치도 없었다.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채 수습하시기도 전에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외치며 손을 활짝 흔들었으니.
그렇게 버텨오신 아버지께선 나에게 '네가 잘 생각해서 결정해.'라고 말씀해주신다. 살아가기 위한 걸음에
살아 남기 위한 발자국을, 그 흔적들을 남겨오신 아버지께선.
얼마전 '얼굴에 핀 주름'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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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아름다움음 세월이 지날수록 차츰 생기는 '주름'이다. 자주 짓는 표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주름은 얼굴의 일부가
되며, 굽어진 길 그대로 삶이라는 옷을 입은 만큼 자신이 보낸 시간을 이야기한다. 다소 억지일 수 있지만 주름이 좋은
이유는 부모님의 얼굴에 있는 주름은 나와 함께 한 순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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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은 나는 항상 받기만 했다. 그럼에도 투정만 일삼는 나는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함부로 했던 말과 행동들이 생각난다. 죄송함과 감사함에 다가가 안아드리며 사랑한다 전하고 싶지만......
어째 용기가 나질 않는다.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순수했던 두 눈에 상처가 고인다. 담아 낼 수 없을 정도로 쌓이자 차츰 흐르기 시작한다.
두 손으로 쉼없이 닦아내지만 감당할 수 없다. 목청껏 울어대며 더이상 안되겠다고 생각할 때쯤이면 늘 계셨다.
곁에. 부모님께서. 그리고 상처를 닦아주며 말씀하신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
비 온 뒤 갠 하늘이 맑다는, 그 의미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출처:brunch_두근거림,google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