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아
스물 한 살, 내가 많이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는 '치열함'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숱한 불면의 밤과 백야를 보내며
나름대로의 격동의 시기였던 스물 한 살의 나날들.나는 방황하는 대학생들의 당연한 코스처럼 휴학을 결심했고
2학년 생활을 '내년 휴학 계획'을 세우는데에 몰두하여 보냈다. 학과 특성인지, 헬조선 청년들의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학교 동기들은 공무원시험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이 대다수였고, 그래서 휴학을 결심한 건
친구들 중 나 하나뿐이었다.
명절에 친척들에게 받는 잔소리 세례처럼, 친구들은 '휴학하고 뭐 할건데? 계획을 똑바로 안세우면 낭비하게
된다던데....." 따위의 질문과 괜한 반감을 일으키는 걱정들을 해주었다. 친구들이 말 끝을 흐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보아온 나의 모습이 '계획을 똑바르게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일것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세워둔 계획이 있었고 그건 나에게 매우 의미있고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남들이 무의미하고
철없다고 생각할 지 모르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열심히 해야지'로 얼버무리곤했다.
그러면서도 밤마다 나를 조금씩 짓눌러오는 생각 들 중 하나는 '내가 치열하게 살지 못하는 건가?'하는 물음이었다.
학교 밖에 하고싶은 것, 알고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데 학교를 다니면서 하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부족했다.
그래서 휴학을 결심했던 것인데, 그런 과정을 나만 견디지 못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학교 공부야 누구든 하기 싫겠지. 근데 다들 참고 하는거 아니야? 너만 괜히 유난인 거 아니야?
너는 뭐가 잘났기에? 라는 화살들이 스스로 주워 가슴에 꽂고 있는 것이다.
또하나 두려웠던 것이 있다. 만일 내가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됐는데도,
또 그냥 여느때처럼 대충하게 되고 그에 대한 열정마저 잃어버린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학점이 좋지 않아도 늘 합리화 하듯 '내가 안좋아하는 분야라서 그래. 나한테 필요없는 공부라고
생각해서 그래.'라며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혹시 그런 결과들이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도 나타난다면?
그럼 그냥 노력하지 않고 힘든건 피하려고만 하는, 그야말로 잉여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웠다. 나는 무엇을 잘할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있어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무서웠던 것 같다. 조급할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등 떠밀리는 듯한 느낌들.
그래도, 어느쪽이 앞으로 가는 방향인지 몰라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확신 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 않다는 믿음. 그것만 있으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치열하고 싶지 않다면 그러지 않으면 되는 거다. 줄에서 뒤쳐졌다고 하기보다는 그저 조금 이탈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잠시 이탈했다 해서 게임 끝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나를 믿어야 하고, 끊임없는 응원을 보내야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세계의 자전을, 그 제자리걸음을 절대로 멈춰서는 안된다. 그걸 멈춰선 순간 그냥 핑계쟁이가
되는 것일 테니까.
나에게 더 집중할 줄 아는 삶.
그리고 치열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그거야말로 넘쳐나는 인생이 아닐까?
(brunch_김민지, google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