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와인 트렌드?
이제 막 싹을 틔운 최신 와인 트렌드.
01 포도밭에서 생긴 일, 양조장에서 생긴 일
먼저 와인 한 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포도밭과 양조장 두 덩어리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포도밭에서는 포도가 여물고, 양조장에서는 수확한 포도로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다. 포도밭 과정에서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이 정의되고, 양조장 과정으로까지 범위를 넓혀야 비로소 내추럴 와인이 구분된다. 유기농 와인은 살충제나 기타 화학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와인,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은 더 나아가 포도나무에 생길 수 있는 질병과 문제를 자연에서 해답을 찾는 것을 포함한다. 동양의학처럼 각종 광물, 식물 재료를 사용하고 포도밭 사이의 잡초에 해충이 모이게 하는 식이다. 내추럴 와인은 이렇게 수확한 포도를 양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황(SO₂,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와이너리에서 사용한다)를 전혀 넣지 않거나 병입 시 극소량만 쓰는 것까지 포괄한다. 수천 년 전 SO₂가 없던 시절의 양조법인 셈인데,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고 양조자가 며칠간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손이 많이 간다. 단단한 고집과 묵직한 신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내추럴 와인 ‘운동Movement’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추럴 와인을 ‘철학’과 ‘양조기법’의 새로운 조합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02 이산화황과 이상적인 철학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열풍이 몰고 온 최신 트렌드지만 명확한 정의나 법규가 존재하진 않는다. 오히려 SO₂ 첨가량을 위반했기 때문에 AOC 규정에서 탈락된다. SO₂를 놓고도 와이너리에선 뾰족한 설왕설래가 진행 중이다. 와인을 마신 후 두통이나 갈증을 느끼는 주원인이 이산화황이라고 말하는 쪽도 있고, 이산화황이 항산화, 항박테리아의 기능뿐 아니라 향미를 개선시킨다는 입장도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와인 업계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프랑스 부르고뉴의 보졸레 지역을 중심으로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다. SO₂를 제한하는 양조 특성상 보졸레의 ‘탄산가스 침용방식macration carbonique’ 양조법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앞장선 이 열풍에 바짝 뒤따르는 건 일본이다. 한국도 이제 막 박차고 나가는 중이다. 한식당 밍글스의 김민성 소믈리에는 내추럴 와인을 레스토랑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있고, 와인 수입사 비티스는 내추럴 와인을 더 촘촘히 들여다보기 위해 프랑스로 떠날 예정이다.
03 내추럴 와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래서, 내추럴 와인의 맛은? 강렬하고 직설적인 기존 와인의 풍미에 비하면 별다른 특징은 없다. 보존제 역할을 하는 CO₂를 와인 속에 그대로 두기 때문에 미량의 탄산이 있지만 이는 디캔팅으로 사라진다. 그보단 포도밭의 특징을 흠뻑 머금는다는 점이 특별하다. 유기농과 바이오다이내믹 포도나무는 뿌리가 길고 깊게 토양 속으로 파고들어 ‘테루아’를 발현할 충분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맛보다는 철학으로 승부하는 내추럴 와인에게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면 냉장 유통이다. 이 과정만 잘 넘기면 진공 보관을 하지 않더라도 2~3일은 생명력을 이어간다. 숙성aging이 힘들다는 통설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일반 와인과 마찬가지로 숙성 잠재력도 충분하다고 본다.
04 파리에서 온 내추럴 와인
보졸레에는 수많은 내추럴 와인이 있다. 그중 마르셀 라피에르, 필립 장봉, 이봉 메트라 그리고 요즘 신성으로 떠오르는 장 끌로드 라팔뤼 등이 유명하다. 최근 2~3년 사이에 내추럴 와인을 전문으로 하110는 숍이 불쑥불쑥 파리 전역에 등장하고 있다. 특히 내추럴 와인 전문 바, 내추럴 와인 레스토랑이 많다. 새로 문을 여는 소위 트렌디한 레스토랑에 내추럴 와인이 필수 아이템처럼 자리를 잡았다. 내가 살고 있는 파리 15구 역시, 상업 지역이 아닌데도 내추럴 와인을 전문으로 하는 와인 숍이 두 곳이나 성업 중이다. 하지만 와인 리스트에 ‘내추럴 와인’이란 표기를 따로 하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알고 찾는 형식이다. 드러내며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선수들은 다 찾아낸다. 최영선(비노필 대표)
드멘 드 샤쏘흐니
(출처:google image. 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