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을 사기위해 서점에 들렀다. 처음엔 가족에게 쓸 요량으로 딱 3장만 구매하려 했는데 문득, 최근 나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 직장동료가 떠올랐고 그에게 답례 겸 연하장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추가로 집어든 연하장이 화근이 되어 나는 연하장을 고르는데 한 시간을 넘게 소요했다. "그 사람 옆자리의 사람은 내가 연하장을 안 주면 섭섭해하지 않을까?"."이 사람은 올해 나에게 참 많은 도움을 줬는데..."그렇게 하나둘 연하장을 써야 될 명목이 늘어나다보니 어느새 내 손엔 각양각색의 연하장이 한웅쿰 쥐어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 채워야 할 연하장을 수북히 쌓아놓으니 그것이 마치 지난 한 해 켜켜이 쌓인 집안 구석의 먼지처럼 퀘퀘하게 느껴져서 언제 치우나 하는 막막함에 목구멍이 텁텁하게 막혀왔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진가를 발휘하기 힘든 것이

연하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펜을 집어들었는데 웬걸, 한장씩 연하장을 채워갈수록 손의

피로감보다 왠지 모를 행복감이 가득 차올라 금세 스무장 남짓의 연하장을 다 채워버렸다.

 

 

 

 

연하장을 쓰다보니 유난히 자주 나온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덕분에'라는 말이었다. 덕분에라는 말은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의미하는 '덕분'에 조사 '에'가 합쳐진 말로 남에게 받는 은혜나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할 때 사용

된다. 그런데 덕분에와 비슷한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말이 '때문에' 인데, 이 말은 덕분에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말이다. '때문에'는 긍정형과 부정형 문장 어디에나 쓰일 수 있는 말이다. "당신 때문에 잘 됐어요," "당신

때문에 망했어요,", 하지만 덕분에는 부정형 문장에 쓰였을 때 비문이 된다. "당신 덕분에 망했어요."(x) 그래서

덕분에라는 말은 때문에 보다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힘을 더 잘 실어준다.

 

 

"당신 때문에 잘 됐어요."

"당신 덕분에 잘 됐어요."

 

그 메세지의 핵심은 바로 나의 공을 남에게  돌리는 것인데 부정이 틈입할 수 없는 '덕분에'를 사용했을 때 만이

나의 진심이 상대방에게 오롯이 전해질 수 있다. 이러한 연유로 내가 덕분에를 유난히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유추해보건대 나의 2015년은 정말 많은 사람들 덕분에 순탄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세상만사가 나 혼자 이루고 행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집에서 매일 혼자 지낸다해도 집을 튼튼하게 지어준

건축업자의 도움을 받는 것일테고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을 제조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일테다. 그 모든게 페이를

지불하고 얻은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가 애초에 사람인 자(人)사이간 자(間)를 써서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을 때 인간이 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으니 우리는 늘 사람들 덕분에 '존재감'을 가지게 되고 삶을 온전히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이 이쯤 닿으니 나는 왜 수북이 쌓인 연하장을 채워가며 출처 모를 행복감이 들었는지 알 것 같다. 나의 2015년을

온전할 수 있게 도와줬던 많은 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 한편에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있었는데 그것을 마치 청소하듯

'덕분에'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처:brunch_센씨,google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