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RE-THINK, 셔츠는 이렇게
아름다운 옷이 차고 넘쳐도, 남몰래 슬쩍 따라 입고 싶은 여자들의 탐나는 셔츠 스타일.
남성적인 기품 ‘테일러블 포 우먼’ 매니저 최미카
최근 한남동 뒷골목에 조용히 문을 연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테일러블 포 우먼(Tailorable For Women)’은 여성들을 위한 정통 클래식 맞춤 수트를 제안하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이곳의 매니저 최미카는 그들의 철학과 아주 잘 어우러지는 여성 비스포크 스타일의 정수를 보여준다. 칼날처럼 잘 재단되었고 구김이 덜 가는 탄탄한 소재로 만들어진 드레스 셔츠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여 보통의 셔츠와는 달리 진중하고 단단한 모습을 자아낸다. 개인의 체형을 고려한 패턴과 취향에 따라 고른 소재나 마감, 봉제 방식으로 이루어진 비스포크 맞춤 시스템은 그 어떤 셔츠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기도 하다. 그녀가 셔츠를 입을 때면 소매를 무심하게 둘둘 말아 올려 입어 숨 막히는 긴장을 살짝 내려놓는 방식 또한 재미있다. 아무런 장식도, 기교도 없지만 어떤 뿌리가 있기에 가장 우아한 기품을 자아내는 클래식 셔츠. 이제 여자도 전통 클래식 수트에 눈길을 돌릴 때가 온 듯하다.
티셔츠처럼 입는 셔츠 ‘렉토’ 디렉터 정지연
좋은 취향과 감각을 지닌 정지연은 소문난 셔츠 마니아다. 디자인이나 소재가 마음에 드는 셔츠라면 따지지 않고 두루 갖추고 있고, 여성복, 남성복 구분 없이 꽤나 많은 셔츠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그녀가 최근 가장 즐겨 입는 셔츠는 직접 디자인과 디렉팅에 참여하여 만든 ‘렉토’다. 2015년 봄과 여름을 위한 컬렉션을 시작으로 처음 탄생한 ‘렉토’는 넉넉한 셔츠라든가 간결한 와이드 팬츠를 즐겨 입는 그녀의 중성적인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 티셔츠처럼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셔츠를 입고 싶어 몸에 꼭 붙는 실루엣은 피하고, 가벼운 면 소재를 사용했다. 물론 잘못된 봉제로 인해 활동에 불편함을 주는 면 셔츠의 단점도 최소화했다. 최근 그녀는 이태원동에 ‘TMI’라는 음식 사업을 시작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패션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경제, 정치 등 상상 이상의 다방면 사회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그녀. 넓고 풍부한 시각과 사고가 하나로 응축되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셔츠를 탄생시키게 된 것이 아닐까.
편안함의 정수 ‘플랫폼 플레이스’ MD 류혜신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색과 형태로 큰 인기를 얻는 ‘로헝스 돌리제(Laurence Dolige)’나 바스락거리는 밀짚 소재가 특징인 ‘브론떼(Bronte)’, 10년 후에도 입고 싶은 옷을 철학으로 삼아 기본에 충실한 옷을 만드는 일본 브랜드인 ‘오디너리 핏츠(Ordinary Fits)’. 류혜신에게 즐겨 입거나 선호하는 셔츠 브랜드를 물었을 때 습관처럼 내뱉는 이름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편안하고 실용적인 옷을 선호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일반적인 디자인에 요란하지 않은 색만으로도 충분히 말쑥하고 멋져 보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가장 현명하고 실용적인 브랜드들이니까. 그녀가 셔츠를 입는 방법 또한 마찬가지다. 구겨지면 구겨질수록 더욱 멋스러운 가벼운 면이나 마 소재를 선호하고, 셔츠가 주는 빳빳한 긴장감이 싫어 일부러 다림질도 하지 않는다. 고리타분한 격식을 던진 채 여유롭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셔츠를 입는 류혜신의 스타일. 이번 여름 시도해봐도 좋을 정도로 충분히 멋스럽다.
기교와 장식 ‘구호’ 수석 디자이너 김해윤
셔츠를 보고 남성적임을 연상하는 건 살색 스타킹을 신는 것보다 더욱 촌스럽다. 온갖 소재와 장식을 더해 상상 이상의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아주 현명한 아이템이니까. 그렇다고 이미 지천에 깔린 실크 같은 소재나 레이스 장식이 더해진 셔츠를 고르라는 얘기가 아니다. 몸에 꼭 맞거나 낙낙한 것보다 현명한 패턴으로 적절한 볼륨을 갖춘 것이나 미미한 장식이 더해진 것으로 손쉽게 세련되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무엇보다 체형의 단점을 보완해주기도 하고. 그래서 최근엔 이런 요소를 곳곳에 넣어 직접 디자인한 구호의 셔츠를 가장 즐겨 입는다. 몸에 꼭 맞는 스커트를 더한다면 출근 복장으로도 손색없을 뿐 아니라 청바지나 원피스 등 캐주얼 아이템과 매치가 용이해 일상생활에서도 무리 없이 다채로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단, 은은한 색채는 그녀가 셔츠를 고를 때 절대 놓치지 않는 부분이다. 자연스러움에 가까울수록 본연의 매력을 가장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 ‘서리얼 벗 나이스’ 디렉터 이은경
‘서리얼 벗 나이스(Surreal But Nice)’의 이은경을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울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성으로 손꼽는 이유엔 수려한 외모와 호탕한 성격, 아름다운 옷을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빼어난 감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을 적절하게 섞는 어떤 명민함이 분명 한몫한다. 그녀가 매 시즌 선보이는 컬렉션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소 넉넉하면서도 남성적인 실루엣에 시스루나 실크 소재 등 여성스러운 장식을 과감하게 섞는 것처럼 말이다. 빳빳한 면보다는 몸을 타고 유연하게 흐르는 실크 셔츠와 견고한 와이드 수트 팬츠의 조합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최근엔 건강하고 밝고 생기 넘치는 삶을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고, 시간이 될 때마다 설치미술이나 인테리어에 관한 전시나 책을 틈틈이 보고 읽는다. 단순히 옷을 잘 입고 좋아하며 만드는 것을 뛰어넘어 자기 계발과 관리까지 철저한 그녀. 브랜드 이름처럼, 정말로 ‘서리얼 벗 나이스’다.
자유로운 방식 모델 손채은
도스토예프스키와 함민복, 바흐를 좋아하고 일본 가정식 요리 배우기에 푹 빠진 손채은의 셔츠에 대한 철학은 조금 남다르다. 기왕 셔츠를 입을 거라면 격식을 차려 진중하고 지루하게 입는 것보다 조금 밝고 편안하게 입는 것이 좋으니까. 날씨도 모처럼 경쾌해지고 있으니. 답답한 칼라의 속박에서 벗어난 차이나 칼라 셔츠는 좋은 대안이다. 특히나 마가렛 하웰이나 무인양품, 갭의 셔츠는 가장 즐겨 입고 좋아하는 것이다. 색도 흰색이나 파란색보다 겨자색, 풀색, 포도주색처럼 약간의 채도가 더해진 것이면 더욱 경쾌한 기분을 내기에 제격이다. 소재 또한 100% 면이나 마가 좋은데, 말끔하게 다려 입기보다 세탁기에 돌려 탁탁 털어 햇볕에 바짝 말려 입는 것을 좋아한다. 자주 세탁할수록 더욱 거칠어지는 이 소재의 셔츠가 주는 재미는 입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셔츠가 주는 긴장을 벗어던진 채 포근하고 편안하게 입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옷이란 건 다분히 그 사람의 사고와 삶의 태도를 고스란히 담는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근본적인 접근 ‘스테디 스테이트’ 대표 안은진
‘스테디 스테이트(Steady-State)’가 사람들의 흥미를 끌게 된 건 오직 셔츠만을 제작한다거나 클래식 스타일이 여전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수트의 명가, 이탈리아 고급 셔츠들에서나 볼 법한 시접을 최소화하는 공법이라든가 마치 실크 융단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고급 소재와 우수한 탄성의 실을 사용해 최고의 셔츠를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스테디 스테이트’의 대표이자 디렉터인 안은진의 차분하고도 단단한 모습과 꼭 닮았다. 그녀는 이태원 뒤편의 낡고 오래되었지만 아담하고 이국적인 쇼룸에서 기본기 없는 유행과 취향을 무색하게 만드는 ‘고전’에 충실한 셔츠만을 만든다. 남성적인 형태의 셔츠에 스웨이드나 시폰처럼 여성적인 소재를 더하거나, 여성적인 셔츠에 납작한 로퍼나 진중한 가죽 가방을 더하며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이 아주 빼어나다. 특히 그녀가 최근 즐겨 입는 허리 여밈이 더해진 원피스 형태의 셔츠는 태생부터 남성적인 드레스 셔츠가 질색인 여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전통적인 태도 <매거진 B> 에디터 남보라
셔츠는 클래식이다. 그리고 셔츠의 정수는 빳빳한 옥스퍼드 소재에 버튼다운 디자인이다. 남보라는 이런 고전적이고 기본적인 클래식의 정석 스타일에 아주 충실하다. 물론 셔츠도 흰색, 파란색 등 기본적인 색상에 그 어떤 장식이나 기교도 없이 고목처럼 진중하고 담백한 것을 선호한다. 무엇보다 셔츠를 입음에 있어 체형을 고려하는 것은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키가 크고 어깨가 다소 넓은 편이라 절개가 많고 허리선이 들어간 것보다 간결하고 경쾌하게 직선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갭이나 제이크루, 아크네 스튜디오처럼 간결한 디자인이 특징인 브랜드의 남성 셔츠를 즐겨 입게 되었다. 최근에는 울 리치에서 옅은 하늘색에 흰색 줄무늬가 얇게 더해진 가벼운 셔츠를 구입했다. 여름에 흰색 반바지와 입을 계획이라고. 근본 없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영원불멸 클래식 셔츠. 언제나 옷 잘 입는 여자들의 이진법이다.
(출처:SING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