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한 처피 뱅의 유행
일자로 자른 단정한 뱅 헤어는 잊어라. 삐뚤빼뚤 불완전하고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처피 뱅의 시대가 돌아왔다.
여자는 새해를 맞아 수많은 다짐을 하고, 새해라는 핑계로 다양한 변신을 꾀한다. 새해니까 손톱 색을 바꾸고, 새해니까 또다시 고민한다. 올해는 앞머리를 자를 것인가, 말 것인가! 안 자를 거면 모를까 이왕 자를 거면 과감해질 것. 그러니까 이마가 보일 듯 말 듯 처연하게 흩날리던 시스루 뱅은 이제 그만 놓아주란 소리다. 처피 뱅이 2016년을 강타할 최신 뷰티 트렌드로 떠올랐으니까!
눈썹 위로 깡총하게 올라간 짧은 앞머리를 일컫는 ‘처피 뱅’은 처피(Choppy)라는 단어에서 짐작했다시피 제멋대로 잘릴수록 멋스럽다. 뉴욕에서 파리까지 세계 4대 도시에서 열린 2016 S/S 컬렉션에서 가장 사랑받은 헤어스타일을 꼽으라면 단연 처피 뱅! 아크네 스튜디오, 랑방, 보테가 베네타, 알렉산더 왕, 프라다, 시블링, 펜디, 마가렛 호웰 등 이들이 보여준 이번 시즌 유행 패션은 제각각이어도 헤어만큼은 한 방향을 향했다. 지난 9월 말, 런던으로 떠난 2016 S/S 컬렉션 출장에선 하루걸러 한 번씩 처피 뱅이 포착됐다. 콘데 나스트 뷰티 디렉터 캐시 필립스는 처피 뱅이란 단어 대신 ‘베이비 프린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리다는 의미의 ‘베이비’와 찰랑이는 술 장식을 뜻하는 ‘프린지’. 짧지만 풍성하되 제멋대로 잘려나간 앞머리 하나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지 지금부터 확인해보자.
이곳은 마르케스 알메이다 쇼를 1시간 앞둔 백스테이지 현장. 메이크업을 끝마친 모델들의 앞머리 커팅을 위해 2평짜리 간이 미용실이 탄생했다. “이번 시즌 프린지 헤어를 명심하세요.” 알메이다 쇼의 헤어 스타일리스트 더피가 숱 가위로 모델들의 앞머리를 과감하게 잘라내며 말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케이티 퍼크릭을 떠올리며 잘랐는데, 어때요? 꼭 찰랑이는 프린지 장식 같지 않나요?” 멋을 아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브랜드, 아크네 스튜디오 쇼에서도 처피 뱅이 등장했다. “컬트적인 매력이 있어요. 한마디로 에지 넘치죠.” 톱 헤어 스타일리스트 유진 슐레이먼도 제멋대로인 앞머리가 주는 강렬한 매력에 푹 빠진 모양이다. 런던에서 파리, 이제 뉴욕으로 넘어가볼까? “알렉스는 소녀 분위기를 강조하길 원했어요. 슬쩍 보이시한 기운이 느껴지면 더 좋다고요. 그래서 우린 드라이를 일절 하지 않았으며 그 누구의 머리에도 컬을 넣지 않았습니다. 그저 커팅만으로 본연의 컬링을 살려줬을 뿐이죠. 인정해요. 예쁘진 않아도 멋있죠.” 알렉산더 왕 쇼의 헤어 스타일리스트 귀도 팔라우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밀란은? 펜디와 프라다 쇼를 보라. 다른 쇼에 비해 숱이 좀 적다 뿐이지 짧고, 제멋대로 잘린 모양새는 꼭 같다.
“헤어스타일은 기본적으로 가로선과 세로선의 구분이 있어요. 시스루 뱅이 세로선이라면 처피 뱅은 가로선이죠. 세로선은 화장기 없고 밋밋한 얼굴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면 가로선은 뚜렷한 이목구비나 센 화장을 부드럽게 중화해줘요. 귀엽고 어려 보이는 효과는 물론이고요.” 어린 나이라면 모를까 짧은 앞머리가 주책 맞아 보이지는 않느냐고? <로마의 휴일>의 헤로인 오드리 헵번을 떠올려보라. 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히 동안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짧은 앞머리 덕분이다.
한번 자르면 돌이킬 수 없기에 실전에 앞서 지금 내 얼굴에 어울리는지부터 점검해보자. “직선적인 얼굴형, 즉 턱이 네모나거나 광대가 튀어나왔을 경우 짧은 앞머리가 얼굴선을 더욱 부각시키므로 스타일 연출의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모로칸오일 헤어 스타일리스트 카이 정의 설명이다. 마를수록 예뻐 보이는 건 처피 뱅도 마찬가지. 짧은 앞머리를 멋지게 소화하려면 다이어트부터 해야겠다. 턱 선이 갸름하거나 얼굴이 작다는 소리를 종종 들어왔다면 당신의 용기 있는 도전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다만 길이는 현장에서 조금씩 올려나가자. “짧은 게 포인트이긴 하지만 모질에 따라서 너무 짧은 길이는 손질하기 어려워 들뜨기 쉽거든요.” 헤어스타일리스트 이혜영의 조언이다.
큰맘 먹고 앞머리를 잘랐다면 이젠 잘 손질할 차례다. 처피 뱅은 길이가 짧은 데다 숱을 많이 잡는 무거운 형태라 자칫하면 모발이 뜨거나 부스스해지기 쉽다. 외국에선 대체적으로 이런 스타일을 반기지만 우리 정서엔 살짝 지저분해 보일 수 있으니 앞머리 스타일링 전 헤어로션이나 고정용 헤어스프레이 등 스타일링 전용 제품으로 밑 작업을 해주자. 훨씬 안정적으로 스타일을 고정할 수 있다. 그리고 앞머리에 볼륨을 살려 둥글게 말아주는 것이 아닌, 드라이어 바람으로 뿌리가 들뜨지 않게 눌러줘야 예쁘고, 이마 위로 떨어진 앞머리가 여백 없이 꽉 막혀 있는 것보다 텍스처를 살려 살짝 삐뚤삐뚤하게 모양을 내줄수록 멋지다. 유진 슐레이먼은 말한다. “좀 세 보이면 어때? 예쁘면 됐지.” 천편일률적인 시스루 뱅과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처피 뱅. 세계적인 헤어 스타일리스트의 선택은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출처:V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