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주얼리의 역사 -르네상스
그림1. “Lyte”주얼리. 1610년 영국. 29개의 다이아몬드가 조각된 금 펜던트. 펜던트의 겉에는 모노그램 IR(스코틀랜드의 James4세를 위한 것으로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음, 영국에서는 James 1세)이 새겨져 있다. R의 가장자리를 장식하는 꽃잎 모양의 난집에 조각되어 있는 4개의 다이아몬드(Burgundian point-cut으로 잘림)는 15세기의 것으로 Burgundy왕조의 다이아몬드 연마사들이 처음으로 면을 낸 다이아몬드다. 열린 펜던트의 안쪽에는 1610년에 Nicholas Hilliard가 그린 영국 왕 James1세의 초상이 들어 있다. Nicholas Hilliard는 영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영국 황실 아티스트로 여왕 Elizabeth1세와 그 후세들을 위해 일했다. Hilliard의 초상화를 조화롭게 금속에 조립시키는 미니어쳐(세밀 초상화)기술. 특히 색이 입혀진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런던, The British Museum 소장) 그림2. |
르네상스 시대의 주얼리는 작품의 가치를 놓고 봤을 때 형상예술의 수준에 비례한다. 주얼리에 사용되는 일러스트레이션은 Albrecht Durer, Hans Holbein 혹은 Giulio Romano와 같은 화가들에게 위탁됐는데, 이런 주얼리의 제작은 그때까지 전통적으로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에나멜 기술과 조각, 주물 기술 등 많은 부분에서 귀금속 세공인들을 정점에 다다르게 했다. 고전 미술에서 유래된 새로운 모티브는 종교와 감성 등이 새로운 형상으로 재해석되어 중세의 전통적인 테마에 첨가됐다.
이 모든 것의 기준점이 된 곳은 이탈리아였다. 우아하고 전통적인 15세기의 주얼리 디자인은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2-1572)의 조각처럼 명확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가 화가 활동 초창기에 모자 장식으로 사용했던 큰 메달이 로마에서 대유행을 했고, 이 여파는 순례자들과 중세 시종들에게 전파됐으며 장식은 모자 챙을 뒤집은 부분에 착용됐다. 이 메달은 주로 조각이나 부조로 제작됐는데, 성서 이야기나 신화 혹은 역사적인 이야기 등 문화나 정신 세계에서 얻은 영감으로 주제를 다뤘다.
고전 문화의 부흥은 세공인들에게 신화, 요정, 사테유로스, 영웅, 건축장식으로 쓰인 삼각형이나 나선형 등 주제의 다양성을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보석 커팅의 기술과 함께 동반됐다. 가장 고급으로 취급되었던 메달은 종교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IHS’라는 이니셜을 고딕체나 로만체로 쓰여진 것에 다이아몬드나 보석을 박아 장식한 것들이었다. 그리스도의 가시관, 못, 그리고 채찍 등을 에나멜을 사용하여 사실적인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들도 있다.
이런 종류의 주얼리는 기독교인 사이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넓게 분포됐다. 동정녀 마리아의 형상 등 로마 카톨릭 교회의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주얼리는 로마 교황청의 카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독점적으로 착용이 됐지만 스페인과 같은 카톨릭 국가에서는 보석이 박힌 메달이나 성인의 형상이 들어간 주얼리를 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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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과 카메오는 부조로 장식된 틀과 함께 사용돼 모자 장식, 메달, 팔찌, 목걸이 등으로 만들어졌고 성서 이야기나 그 시대 복장을 한 르네상스 시대 인물의 초상 등은 카메오 조각의 고전적 테마로 사용됐다. 정치가들은 그들의 초상을 최상의 카메오로 조각해 기증하기도 했다.
이 시대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던 장식은 뚜껑에 보석을 박아 정교하게 작업한 작은 케이스나 긴 목걸이 체인에 달아 착용한 초상화 메달이었다.
<출처: 귀금속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