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와 비흡연자의 길고 긴 전쟁
<사진출처 : 베어의 네모안세상 인디언 소녀 임지우>
한 인디언 소녀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너무나 추한 얼굴을 갖고 태어난 그녀는 일생 동안 단 한 번의 연애도 할 수 없었다. 마음은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했지만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보고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귀엽다고 하는데 부모에게서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여자로서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면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가엽게도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다음 생엔 세상의 모든 남자와 키스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녀가 죽은 자리에 풀이 하나 돋아났는데 그것이 바로 '담배'라는 것이 인디언의 전설이다. 과연 그녀는 소원을 이룬 것 같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흡연자는 무려 11억 명에 이른다.
성별로는 남성의 47%, 여성의 12%니 인디언 소녀는 본의 아니게 세상의 많은 여자와도 키스를 하게 된 셈. 여기에 전 세계 흡연자의 1/3이 중국인이라고 하니 역시 중국은 세계의 굴뚝(?)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담배의 해악을 지탄하고 국가와 가정에서 흡연자에 대한 전 방위 압박은 거세져만 가는데 흡연 인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과연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투쟁은 최근부터 일어난 일일까? 그렇지 않다. 담배의 역사는 피로 쓰인 역사,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싸움은 오히려 예전에 더욱 치열했다.
담배를 향한 단속과 오해
일찍 담배를 배워 학창 시절 창고나 화장실, 야산 등에서 조마조마하게 담배를 피우다 적발당해서 모질게 얻어맞았던 남자들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비로소 떳떳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그런 탓인지 가족이나 애인이 흡연에 대해 탓하는 순간 그들의 감정은 폭발한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 나이에도 담배를 숨어서 피워야 하나?'
흡연자들은 말한다. 옛날이 좋았다고. 요새 와서 금연 장소가 점점 늘어나고 흡연자의 입지는 좁아지기만 한다고. 그러나 사실은 요즘만의 문제는 아니다. 담배가 보급된 초기부터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대결은 시작되었다. 영국의 제임스 1세는 지독한 혐연가로서 최초로 금연 구역을 지정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다.
"거기서 내뿜어지는 검고 악취나는 연기는 밑바닥 모르게 깊은 갱 속에서 분출하는 지옥의 연기와 매우 비슷하다."
아마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에 대한 물리적 혐오 외에도 담배 연기가 연상시키는 종교적인 혐오감 역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 최초의 흡연자는 군인이자 탐험가였던 월터 롤리였다. 그는 신대륙에서 공수한 담배를 집에서 즐기고는 했는데 하인들이 그것을 뒤에서 보고 주인 머리에 불이 났다고 기겁해 물을 끼얹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는 제임스 1세가 담배를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연하지 못했기에 결국 참수당했다.
광해군은 근소한 차이로 세계 최초의 금연운동가 타이틀을 제임스 1세에게 빼앗겼다. 담배가 보급된 이후 조선에서는 너도 나도 담배를 피웠는데 서당에서 훈장과 학도가 맞담배를 피우기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정의 공신들도 마찬가지여서 조회를 하는 정전이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광해군은 이에 분노해서 자신의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 이후로 임금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었고, 이것이 민간으로 퍼져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예의로 여겨졌다.
담배 보급 초기에 가장 난폭하게 흡연자들을 괴롭혔던 사람은 오스만 제국의 무라드 4세였다. 광해군은 죽이겠다고 협박만 했고 제임스 1세는 1명의 목을 잘랐을 뿐이지만 무라드 4세는 무려 3만 명의 목을 잘랐다.
무라드 4세가 담배를 혐오한 이유는 차이하네(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며 술탄을 비난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1633년 이스탄불 화재 사고의 원인이 담배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는데 원인이 뭐든 그의 담배 혐오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부자든 귀족이든 외국인이든 담배를 피우는 이는 목이 잘렸다.
심지어 프랑스 대사관 직원들이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외교관 면책특권을 외치며 대사관 안에서 마음껏 담배를 피우자 군대를 보내 담배를 피우던 프랑스인들의 귀를 잘라내고 추방했다. 당연히 프랑스 측에서 항의를 하자 그 대답이 가관이었다. "외교관 특권을 생각해서 귀로 봐준 것이다."
무라드 4세는 술탄인 몸으로 거지 분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적발해 목을 베고, 암행어사처럼 부하들을 보내 흡연자를 색출했다고 하니 담배와 원수라도 진 사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우는 사람은 목숨을 걸고 피웠는데, 사람들은 콜로냐(kolonya)라는 독한 레몬 향수를 개발해 손이나 입가에 뿌려 담배 냄새를 숨기기도 했다. 그런 탄압을 겪고도 꾸준하게 담배를 피워대다 담배 금지령이 사라지자 오스만 제국의 후예인 터키는 이후 세계적인 골초 국가가 되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17세기 독일에서도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하면 법정에 서고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칼뱅주의에 심취한 사회 분위기 덕에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겼고 공공장소에의 흡연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1848년 3월, 독일 동북부 프로이센에도 혁명의 기운이 용솟음쳤다. 성난 폭도들은 당장에라도 왕을 끌어내 참수라도 할 기세였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어떻게든 민중을 진정시켜야 했다.
그는 민중들에게 특사를 보내 달랬다. 민중들이 내세운 것은 헌법 제정과 검열 폐지,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권이었다. 왕은 결국 그 요구를 수용했는데 국민들이 가장 환호했던 것은 흡연권이었다. 이제 아무 데서나 눈치 볼 것 없이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닿는 성과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군주가 담배를 싫어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정조는 유명한 골초였다. "여러 가지 식물 중에 이롭고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만 한 것이 없다. 민생에 이용되는 것으로 이만큼 덕이 있고 이만큼 공이 큰 것이 어디 있겠느냐?" 정조는 담배는 몸에 좋다는 주장을 펼쳤고 그 탓인지 민간에서는 담배가 편두통, 매독 등에 효과가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배가 아픈 아이에게 담배를 물리는 경우가 있었고 이는 1970년대까지 민간요법으로 남아 있었다.
애연가들의 고충
흡연자 입장에서는 강제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상황은 죽을 만큼 괴로운 경우다. 담배의 중독성은 웬만한 마약류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이트는 젊었을 때부터 흡연자였는데 이후 담배를 끊으려다 우울증이 걸려 코카인(당시엔 합법이었다)을 복용하기 시작해 이후 코카인 중독자가 되었다. 그 다음에 코카인을 끓으려고 또 담배를 피우게 되었고 결국 구강암이 걸려 턱을 잘라내고 인공 턱을 붙였지만 끝내 구강암으로 죽고 말았다.
전시 상황에서도 흡연 욕구는 참기가 쉽지 않았기에 한밤중에 담배를 피우다 적에게 발각돼 죽는 경우도 많았다. 이처럼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해서 금연할 흡연자들이 아니기에 대체품으로 보급된 것이 바로 씹는담배다. 연기를 내지 않으면서 니코틴을 섭취할 수 있기에 군인들에게 많이 보급되었다. 화재의 위험이 있는 현장의 인부들도 애용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TV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뭔가를 질겅거리다가 침을 뱉는 장면을 예전에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씹는담배다. 운동장에서 담배를 피울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금단 증상을 참기도 힘들어서 보급된 것이다. 이는 선수들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보일 정도로 유명했으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규제함에 따라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비흡연자는 어떻게든 흡연자들의 씨를 말리고 싶어 하고 흡연자들은 어떻게든 그 탄압(?)에 맞서 담배를 피우려고 한다. 이것은 몇 십년의 역사가 아닌 몇 세기 동안의 길고 긴 전쟁이다. 최근 흡연자의 입지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당신은 행복한 축에 속한다. 적어도 이제 담배를 핀다고 목이 잘리는 일은 없으니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세상 모두와 키스하고 싶은 못난이(사물의 민낯 2012.04.16 애플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