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주자 개성·독창성 많이 부족한 것 같아"
英 '아이돌 피아니스트' 그로브너
쇼팽·바흐 레퍼토리로 22일 공연
영국 클래식계의 아이돌, 피아니스트 벤자민 그로브너(23)가 2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국내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그는 2004년 영국의 클래식 대회인 ‘BBC 올해의 젊은 뮤지션 대회’의 건반악기 부문 최연소 입상자로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한국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로브너는 “어린 나이에 경연에 나갔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고 말했다.
프레디 켐프와 애슐리 와스 이후 자국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이 뜸했던 영국에서, 언론의 ‘신동 마케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영국 왕립음악원 교육을 거쳐 2011년 최연소로 클래식 레이블 데카에 영입됐다. 데뷔 음반 ‘쇼팽, 리스트 & 라벨: 피아노 소품집’은 2012년 그라모폰상 ‘최우수 연주 앨범’ ‘올해의 젊은 음악가’ 부문을 수상했다.
“저는 제가 그렇게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호평에 휘둘리지 않으려고도 노력하죠. 물론 좋은 평가는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는 “연주가 한계에 부딪힐 때면 호로비츠, 치프라, 로장탈, 코르토, 모이세비치 등 ‘피아노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이들의 연주를 즐겨 듣는다”며 “릴리 크라우스의 레코딩이나 아르투르 슈나벨의 연주에 비해 오늘날의 연주는 각 연주자의 개성이나 독창성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발매한 앨범 ‘댄시즈(Dances)’(데카)는 바흐의 ‘파르티타’, 쇼팽의 ‘폴로네이즈’, 스크랴빈의 ‘마주르카’, 알베니즈의 ‘탱고’ 등을 담았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음반으로 들어본 연주는 평범하지만, 레퍼토리 구성력이 탁월하다. 초점을 맞춘 작곡가가 선대의 작품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원곡과 편곡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작품을 선보인다. 30대 아티스트들이 시작하는 작업을 이미 20대에 시작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번 리사이틀은 그의 첫 아시아 순회공연의 일부다. 싱가포르와 중국 베이징을 거쳐 한국 무대에 선다. 전반부는 바로크음악에서 영향을 받은 프랑크의 ‘전주곡, 합창과 푸가’, 라모의 ‘가보트와 변주곡’, 바흐-부조니의 ‘샤콘느’ 등으로 구성했다. “라모는 샤콘느를 듣기 전, 혀를 닦아내는 듯 한 역할을 하죠. 부조니와 프랑크의 작품 모두 어두우면서 비극적인 작품이며, 흡사 오르간의 울림과도 같은 비슷한 색채감을 지니고 있어요.”
후반부는 쇼팽의 ‘마주르카’, 그라나도스의 ‘시적 왈츠’ 등을 선보인다. 그로브너는 “쇼팽의 음악은 폴란드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고, 그라나도스의 작품 역시 스페인의 색채가 강하다”며 “두 작곡가 모두 완벽하게 피아노와 어울리는 음악적 선물과 같다”고 설명했다.
“좋은 연주는 청중들과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연주라고 생각해요. 이번이 첫 한국방문인데, 관객들이 제 연주를 즐겼으면 해요.”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