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귀한 사진자료 - 2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5.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낸 후
임시 국회의사당인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신 국방장관은 “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평양에서---“ 라고 상대의 전력도
모른 채 큰 소리쳤으나 6.25 발발 후 서울시민은 팽개치고
몰래 서울을 빠져나갔다.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1. 2. 15. 대한민국 해상 이동방송선(HLKT)을 방문한
장면 총리 일행.
▲ 1951. 9. 콜트 미 8군 부사령관의 이임식장.
(왼쪽부터 허정, 콜트, 무초 주한 미대사)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 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12.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1950. 8. 10. 핫바지들을 인솔하는 미 해병대.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뜨거운 전우애”
한 병사가 부상당한 전우를 업어가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야간전투후 주간 취침.ⓒ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취침 후 병기 손질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4. 피난민들의 보금자리 산동네 판자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버리게 했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8. 다리 아래 피난민 움막.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8. 9. 임시 포로수용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이 사진이 기록물이 부족한 우리 조국에 남기를 바랍니다.
생사가 교차되는 전선에서 귀한 사진을 남긴 카메라맨들에게
경의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