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또 풀려있구나
신경을 많이 써줘야 되는 친구가 있다. 하루에 적어도 한 두시간 마다 상황 파악해야 되는 친구이다.바로 자주
풀리는 신발끈이다.설마하는 스쳐지나가는 의심을 못이겨 슬쩍 다리 밑을 보면 역시나 풀려있다. 버스를 쫓아
뛰어 갈때도, 신호등 신호 기다릴때도, 커피 마시러 자리에서 일어날때도, 심지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풀려
있다. 신발끈도 성격이 있는 듯, 잠시나마 나의 집중이 다른곳으로 향해 있다면 '나에게도 관심 좀 주세요.'하며
자신을 풀어버리나보다.
과거에 나는 이런 고집 쎈 신발끈과 갈등을 한참 했었다. 처음엔 궁시렁 거리다가 나중엔 이 친구의 특이한 성향을
당연히 받아드리기 시작했으며, 살짝 웃기지만 가끔 풀려있지 않을 때, 갑자기 나의 신발끈에 대한 대견함에 뿌듯
하기도 했다. "그래, 한시간 버텼구나. 장해라."
그리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신발끈이 풀리는 것에 대해 나는 그토록 싫었을까? 짜증나기보단 사실
귀찮았다. 그 이유를 곰곰히 머리에 굴려보니 몇 가지 이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1.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고 있던 늘 멈춰야한다.
매번 신발끈이 풀려 있으면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꽉 막힌 지하철 안에서 꼼짝 못하고 있던,강남 한복판
에서 사람피해 걷고 있던, 어색하게 엘레베이터에서 서있던, 다음 곳을 가기 위해, 다음 액션을 취하기 위해 나는
일단 멈춰야 됐다. 아무리 내 마음이 조급하고, 아무리 나의 일이 중요할지라도 신발끈을 해결하지 못하면 넘어갈
수가 없었다.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시작하러 사무실에 들어가게 될지라도, 일단 신발끈이 우선순위가 되더라.
그래서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고 있던 멈추게 되더라.
인생은 가끔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내가 원하는 곳이나 시기나 환경이 아닐수도 있으나, 다시 기본을 챙겨야 되고 제일 당연한 것을 뒤돌아봐야
될 때가 있다.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 것을 미루면 미룰수록 안전과 멀어진다.
2.주의에 누가 있던 무릎을 꿇게 된다.
한번은 2분뒤에 오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끈을 묶으려고 무릎을 구부리고 몸을 낮추자 내 앞에 있던 분
이 잠시 놀래섰다. 내가 그분에게 뭘하려고 한 줄 착각하셨나보다. 내 손이 나의 신발으로 향하자 그때서야 안심이
되셨는지 시선을 돌리셨다. 신발끈이 풀리면 주위에 누가 있던지 무릎은 꿇게된다. 낮은 자세로 신발의 가장 기본
적인 끈을 다시 묶는다. 예전에 아빠에게 테니스를 배울때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 공을 정확하게, 멀리, 힘있게
반대편으로 보내고 싶다면 무릎을 구부리고 스윙하라고 하셨다. 몸을 낮추지 않으면 공은 위로 날아가버려서 아웃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이와 같이 걸을 떄도 멀리가려면 일단 무릎 꿇고 끈을 묶어야 안전하게 멀리갈 수 있다.
낮은 자세를 가져야 당당해 질 수 있다.
겸손은 잠시 나를 나약해보이거나 작아보이게 할 수 있으나 무릎을 구부리지 않으면 판에서 아웃이 되는
수가 있다. 기본이 갖춰져야,끈이 묶인 것에 확신해야 더 당당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나 싶다.
3.두 손을 사용하게 된다.
이 부분이 사실 마음을 어렵게했다. 특히 다른 물건을 들고 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다 내려놓고 두손으로 끈을
묶을 수 밖에 없었다. 한번은 누가 지나가다가 나의 테이크아웃 커피를.... 계약서이던, 휴대폰이던, 테이크아웃
커피이던, 잡고 있던 것을 일단 내려놔야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끈을 묶으려면 두 손이 필요하듯이 인생의 가장 바탕되는 것은 제일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예의범절이나 가치관이나 윤리,또는 인간 바탕이 되는 것들 대해 너무 한 손으로만 다룰려
하고 전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출처:brunch_yeji choi,google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