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섬, 강화도
갑자기 바다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대부분 가슴이 콱 막혔거나, 머리가 소음으로 가득 찼을 때다. 탁 트인 바다 너머를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바다에 생각을 토해내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법이다. 아름다운 겨울의 바다를 마주하고 싶었다. 차분하고 한적해서 코끝에 여유를 묻히고 돌아올 수 있는, 그런 동네를 찾았다. 작정하고 길을 떠나면 되레 몸이 피곤해지므로 멀리 갈 수 없다. 그래서 강화도에서 한 끗 떨어진 섬 속의 섬 석모도와 교동도를 찾았다. 입 안 에서 굴리는 낯선 어감이 좋았다. 자고로 여행이란 낯선 동네에서의 이방인이 되는 놀이일 테니까.
석모도와 갈매기 쇼
낯선 이방인이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다진 채 48번 국도를 달렸다. 김포를 지나 강화에 들어서 배표를 끊었다. 서울에서 강화도까지는 다리가 이어주지만,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 입구인 석포리 선착장까지는 배를 갈아타야했다.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수시로 운항한다. .15km의 짧은 거리라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석모도 여행의 준비물은 단 하나, 새우맛 과자다. 배가 출발하면 바다에 떠 있던 수십 마리의 갈매기가 일제히 날아 올라 호위를 시작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장관이다. 과자를 던지면 숙련된 곡예감각을 자랑하면서 과자를 낚아채고, 사람들은 이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애쓴다. 과자를 든 손을 높게 들고만 있어도 순식간에 과자가 사라진다. 흡사 맹렬한 전투부대나 서커스원 혹은 자신들의 구역을 관리하며 상납받는 건달 같아서 웃음이 날 정도였다. SNS에서 검색한 석모도의 지분 대부분을 이 갈매기 떼가 차지한다. 15여분의 공중 쇼가 끝나면 갈매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우아하게 바다를 노닌다. 깃털을 고르며 다음 배의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갈매기들 사이로 바다 위의 다리 공사가 한 창이다.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다리, 삼산 연륙교가 완성되고 나면 더 이상 석모도는 섬이 아니게 된다. ‘섬 속의 섬’이라는 로맨 틱한 단어가 사라지는 건 어쩐지 아쉬웠다. 영화 <시월애>에는 두 주인공이 사는 바닷 가 집이 나온다. 시 구절처럼 곱고 아름다운 영화는 이곳 석모도에서 촬영했다. 주인공 인 이정재와 전지현의 얼굴에는 시간이 멈췄어도 그게 벌써 16년 전이다. 석모도의 바다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감미롭다. 영화의 인기 덕에 여전히 외지인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석모도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변치 않았다.
드라이브 코스로는 석모도 남쪽, 간척지를 따라 곧게 뻗은 길을 추천한다. 1950년대에 조성된 23만7천 평의 거대한 염전이 문을 닫은 지도 십여 년이 지났다 . 바다와는 또 다르게 숨이 트이는 고요한 풍경이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폐염전의 흔적은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계속 달리면 석모도 남쪽 끝자락에 있는 석모도의 유일한 해수욕장 민머루해변에 도착한다. 끝과 끝이 멀지 않아 소박하지만 바닷물이 빠지면 수십만 평의 광활한 갯벌이 나타난다. 활처럼 휜 백사장의 끝자락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절벽이다. 봄이면 이 주변으로 진달래가 만발한다.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알려진 저어새의 서식지라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동네로, 부근의 어류정항과 장곶항에는 바다낚시꾼들이 찾는다. 민머루해변 북서쪽, 고깃배 몇 대가 떠 있는 곳은 장구너머 포구다. 저녁 무렵이면 포구 너머로 기우는 낙조가 서럽도록 아름답다.
멋진 바다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4륜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다. 험한 지형에서 달릴 수 있게 개발된 터프한 오토바이인데,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중간 형태라고 보면 된다. 바다 코스와 산, 바다 코스를 고를 수 있고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면허가 없어도 탈 수 있다. 간단한 교육을 받고 연습 삼아 운동장을 빙빙 돈 다음 바닷가로 나선다. 지갑의 운전면허가 내 것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초보운전자는 소심함이 앞섰지만, 그런 걱정 따윈 파도에 버리기로 했다. 울퉁불퉁한 자갈밭 해변을 달리자 바닷바람이 뺨을 쓸었다. 내친김에 부릉부릉 속도를 올렸다. 엉덩이가 들썩이니 덩달아 심장이 쫄깃해졌다. 화끈하고 과격한 범퍼카를 탄 것처럼 신났다. 바닷바람의 또 다른 결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스피드에 빠지는 레이서의 기분을 약간은 알 것도 같았다.
심신의 보양
민머루해변에서 낙가산 자락으로 들어서면 보문사 입구를 만난다. 석모도 여행객의 대다수는 보문사에 들를 만큼 인기 있는 코스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금강산에서 내려온 화정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졌다. 보문사의 보물은 전망대에서 서해를 내려다보는 풍경이다. 그 절경을 보기 위해 짧지만 가파른 산행이 필요한 게 문제다. 일주문에서부터 언덕을 오르면 웅장한 대웅전이 나오고, 대웅전 왼쪽으로 석굴 법당이 보인다. 바다에서 건져올린 스물한 분의 나한상을 모신 석굴 사원이다. 다시 대웅전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산 중턱까지 이어지는 420여 개의 돌계단이 나온다. 사람들은 이 계단을 ‘소원이 이루어지는 계단’이라 부른다. 계단을 올라 산 중턱의 바위에 새겨진 자비로운 마애석불 좌상 모습 또한 장관이다. 두 손 모아 신년의 소원을 빌고, 다시 한 번 서해를 한눈에 내려다본다. 석모도의 품은 넉넉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덕분에 마음의 기력은 충전했지만, 반대로 신체의 기력이 방전됐다. 석모도에서 강화도로 나와 장어집을 찾았다. 강화도의 갯벌은 세계 4대 갯벌 중 하나로 천연기념물 제419호로도 지정됐다. 면적이 자그마치 여의도의 50배에 이른다. 갯벌이 있어 좋은 점을 찾자면 수두룩하겠지만, 맛있는 갯벌장어를 지나치긴 서운할 터다. 하천과 바다가 합류되는 지역에는 미네랄이 풍부한 넓은 갯벌이 형성되고, 이는 장어가 자라기 좋은 천혜의 조건이 된다. 근처에는 갯벌을 막아 어린 장어를 키우는 갯벌장어 양식장이 많다. 장어 골목이 있을 정도로 장어는 강화도의 특산물이다. 국보급으로 질 좋은 갯벌에서 자란 강화도의 장어는 튼튼하게 살이 올랐을뿐더러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하다. 숯불에 곱게 뒤집어 구운 장어를 명이 잎에 싸서 꼭꼭 씹어 먹는다. 취향에 따라 넣은 마늘과 쌈장이 장어의 깊은 맛을 거들 뿐. 장어로 호랑이 기운을 채운뒤 다음 행선지로 길을 떠났다.
교동도의 시간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유배지로 악명 높았던 교동도는 강화도의 서북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민간출입통제선 북쪽에 있어 예전에는 외부 사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섬이었다. 북한과는 불과 2.6km 남짓 떨어져 있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에서는 이곳을 군사지역이라 설명한 군인들이 검문을 했다.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개성을 갈 수 있는 동네라는 게 실감 났다. 교동도를 찾은 이유는 대룡시장에 가기 위해서였다. 6.25전쟁 피란민들이 몰려들면서 만들어진 대룡시장의 골목은 400미터 남짓.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약 1 0분 걸린다.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지만, 여느 지방의 소읍내보다 작은 규모다.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미장원과 시계점, 조선운동화를 판다고 적어놓은 중앙신발, 전파사, 약방, 이발관, 정육점, 다방, 양복점이 좁은 골목 사이에서 처마를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없을 건 없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골목에는 시간의 때가 누덕누덕 붙어 있었다. 지붕에는 슬래이트가 얹혀 있고, 간판의 칠은 벗겨져 있었다. 그건 정겨움이었고, 그 옛날 골목에서 딱지치기하던 어린 시절의 향수였다. 옆에선 머리에 보자기를 덮어쓴 할머니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요즘엔 보기 힘든 알록달록한 보자기가 시선을 잡았다. 저 보자기가 걷히면 분명 라면땅처럼 꼬불꼬불한 헤어 스타일이 완성될 거였다. 교동이발관의 터줏대감인 백발의 이발사는 보지 못했지만, 손길이 묻은 가위와 면도기, 이발 도구가 여전히 단정하게 놓여 있음을 확인했다. 최근 대룡시장은 ‘교동섬 나눔 축제’를 통한 시민들의 봉사활동 덕분에 예쁜 벽화 옷을 입었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와 같은 새마을운동 시절의 포스터가 군데군데 그려졌다. 마치 섬 전체가 1960년대를 재현해놓은 영화 세트장 같았다. 시간을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괜스레 신이 났다. 시간 여행은 서울로 올라가는 길, 다시 강화도로 이어졌다. 길산면에 위치한 그린망고에는 오랜 시간 유럽을 여행한 주인장이 있다. 파스텔 컬러의 1970년대 빈티지 카라반이 맞이하는 이곳은 빈티지 그릇가게이자 카페, 펜션으로 운영된다. 손재주 좋은 그가 뚝딱뚝딱 손수 인테리어한 곳이다. 유럽의 목조 농장처럼 아기자기한 곳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크다. 1층과 2층 그릇가게에는 폴란드와 체코에서 넘어온 그릇이 가득 쌓여 있다. 청명한 푸른 무늬가 주를 이루는데 그 빛이 영롱하다. 3대가 유리 공장을 운영한 유리 장인들의 작품부터 영국의 국민 그릇인 코니시웨어의 오리지널 버전, 체코에서 온 100년 된 시약병, 수제 도마 등을 만날 수 있다. 빈티지 그릇은 요즘 그릇과 다를 게 없이 예뻤다. 유행은 돌고 돈다. 인간은 존재하고, 그릇은 빗살무늬 토기 시절부터 항상 있었으니 그 시간의 굴레가 재미있게 느껴진다. 가게 주인은 그릇 하나하나를 들고 상세히 설명했다. 팔지 않는 빈티지 소장품에 대한 애정 또한 대단했다.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고, 그가 건네주는 커피는 향긋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어두워진 밤길이 집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에서 떠난 섬 여행길은 시간을 잠시 멈춰 놓은 것만 같았다. 시간이 고여 있는 흔적은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겨울의 온도가 한 뼘쯤 따스하게 다가왔다.
(출처:AII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