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기억의 스팩트럼, 그리고 행복의 조건.1
몇년 전 부터 국내 대중문화의 키워드에는 늘 '복고'라는 단어가 포함됐다. 1980년대를 다룬 영화 <써니>를 시작
으로, 6~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빛과 그림자>,방영때마다 신드롬을 몰로 온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와
영화 <건축학 개론>,2015<무한도전>을 통해 불었던 <토토가>열풍 등.
그 외에도 많다. 영화,드라마,음악,예능 할 것 없이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과거'의 시간들을 반추하기 시작했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라며 애써 날카로운 시작으로 그 당시를 회고하려고 애써도, 과거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때가 좋았지라는 '그리움'의 정서다.
그런데 이러한 '복고'또는'과거'에 대한 테마가 비단 우리만의 키워드는 아닌 것 같다. 픽사가 2015년 세상에 공개한
<인사이드 아웃>은 대놓고 '복고 정서'를 들고 나오는 우리의 콘텐츠들과는 사뭇 다르지만 어른이 된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유년시절을 추억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그 맥락을 같이한다. 게다가 어린이 관객들에게도
그 자체로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고 말이다. 이런면에서 본다면 '복고정서'는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 키워드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픽사가 다시 한번 '사고'를 쳤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영화라는 분야 전체를 통틀어서도,아이디어의 기발함과
스토리의 탄탄함, 게다가 전달하는 메세지의 울림까지 삼박자를 두루 갖춘 손꼽히는 '작품'을 기어이 만들어내
고 말았다.
<인사이드 아웃>.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이 애니메이션은 보통의 흥행작들처럼 물량공세의 마케팅 활동이나
스크린 독점 등 외부환경에 의해 흥행을 강요받지 않았다. 소리 소문 없이 개봉해서 조용히 관객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전 세계 다수의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대거 쏟아져나오는 여름철 영화시장에서 당당히 살아남았다. 그것도 순위를 역주행하면서 말이다.
인간의 다양한감정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표현한 <인사이드 아웃>은 11살의 '라일리'의 중요 감정을 형성하고
있는 5가지 감정들(기쁨이,슬픔이,버럭이,소심이,까칠이)의 두뇌 속 활동을 그리고 있다. 뜻하지 않게 벌어진
사고로 인해 기쁨이와 슬픔이가 감정 본부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라일리는 감정의 변화를 겪게되고 라일리의
두뇌 속 세계를 떠돌게된 기쁨이와 슬픔이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감정 본부로 돌아가는 것이 이 영화의핵심
줄거리다.
기쁨과 슬픔,인간의 모든 감정을 대표하는 감정이자 인간이 가장 자주,그리고 많이 느끼는 이 두감정은 그동안
흑백논리처럼 양극단에 위치한 감정으로 이해되었다. 기쁨의 반대 감정은 슬픔, 기쁨은 좋은것, 슬픔은 나쁜것
기쁘면 행복하고 슬프면 불행한것, 이런 식으로 기쁨이 완벽히 긍정적인 위치에서 환영받아 온 감정인데 반해
슬픔은 완벽히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떄문에 사람들은 슬픔은 어떻게든 극복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곤한다. 지금 내가 슬픈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든 슬픔을 견뎌내고,벗어나서 궁극적으로는 '이겼을 때',우리는 행복하다고 믿는다.
<인사이드 아웃> 은 이러한 일반적인 인식에 대해 진지하게 반문한다.
"행복은 과연 기쁨의 감정만으로 가능한가?"라고.
라일리가 11살이 될 떄까지 그녀의 감정을 지배했던 것은 기쁨이였다. 자녀는 태어나는 순간 부모에게 기쁨이
된다. 다른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존재만으로도 기쁨의 대상이다. 그래서 라일리의 부모는 갓 태어난
라일리를 보면서 우리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라일리를 사랑을 다해 키웠다.
어린 라일리에게 부모는 삶의 전부였고, 가족과 함꼐 보내는 시간은 최고로 즐거웠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아빠의
목마를 타고 엄마가 안아주는 것,방안을 어지럽히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이리지리 넘어져도 아빠와 함께 스케
이트를 배우거나 어린이 아이스하키팀에서 친구들과 경기하는 것 등.
라일리의 어린시절의 모든것은 즐겁고 재미났으며,때문에 라일리를 지배하는 핵심 감정은 기쁨이였다. 이는
비단 라일리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라일리가 대변하는 우리 모두의 유년시절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얼굴에
흙을 묻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넘어지고 꺠져서 아프다고 울어도,우리의 어린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는
대체로 기쁘고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기쁨이 주도하는 시기는 라일리가 11살이 되면서 급변하기 시작한다. 11살이면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점
이다. 게다가 이 시점에 라일리 가족이 고향 미네소타를 벗어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라일리는
환경의 변화까지 겪게된다. 소꿉친구 및 소속 하키팀과의 이별, 낯선 도시, 이삿짐센터의 실수로 자신의 짐은
도착하지 않고, 게다가 아빠는 새로운 사업떄문에 바빠서 라일리에게 신경 써줄 틈이 없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환겨으이 변화 떄문에 라일리가 감정변화를 겪는 흐름은 매우 자연스럽다. 낯선환경을 마주한
라일리를 위해 5가지 감정 캐릭터들이 난리법석을 떠는 것은 라일리의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표현되는데, 이전까지
뒤에서 조용히 있었던 슬픔이가 갑자기 감정의 조절핸들을 잡기 시작한것이다. 핵심기억을 만지는 등의 슬픔이의
돌출 행동이 발생하자 이전까지 라일리의 감정을 리드했던 기쁨이가 반발하고, 그러면서 라일리의 감정 변화는
가속도를 띈다.
슬픔이는 라일리가 어린 시절 겪었던 여러 기억들중 기쁨이가 선별해 놓은 핵심 기억들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핵심 기억들은 라일리가 자라서도 잊혀지지 않는 것들로, 어린 시절 기억중에서 기쁨이가 라일리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즐거운 추억들로만 선별해두었던 기억들이다. 그러나 그 핵심 기억들에 슬픔이가 손을 대면
기억은 달라진다. 즐겁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그 핵심 기억들에 슬픔감정이 들어가면서,슬프기도 했던 기억으로
바뀌는 것이다.
기쁨이가 반발한것은 이떄문이었다. 이는 행복관에 대한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기도하다.
"행복한 기억=즐거운 기억'이라는 공식.
우리가 과거를 회상할떄 즐거웠다고 생각되면 우리는 그것을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여긴다.그래서 과거는 미화
되고, 회고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왜곡된다. 특히 유년시절은 더욱 그렇다. 그때는 마냥 즐거워서, 이 세상의
어떤 슬픔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았다고 우리 모두는 종종 착각한 적은 없었는지.
인간의 두 기본적인감정인 기쁨이와 슬픔이는 티격태격하다가 라일리의 일부 핵심기억과 함꼐 본부에서 이탈
하는 사고를 당한다.라일리의 감정을 다스리는 본부는 감정을 통해 라일리의 인격 및 자아까지 통제한다는 점
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 중요한 곳을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이탈해버렸으니 문제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감정을 주관하는 본부에 남아있는 감정이라곤 버럭이와 까질이 그리고 소심이 뿐이다.
덕분에 라일리는 변한다. 이전에기쁨이가 리드해서 조정석을 잡았을 떄는 라일리는 명랑하게 웃었고 부모 말도
잘 듣는 착한 탈이었으며 친구들과도 잘지내는 모범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버럭이와 까칠이 소심이만은 남은 이상 라일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말을 잘 듣지도, 웃지도 사교적이지도
않았다. 매사가 물만스럽고 짜증이난다. 엄마아빠보다는 혼자 있고 싶고, 학교생화롣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변해버린 라일리를 되돌리기 위햐ㅐ 버럭이와 까칠이 소심이가 더 노력하면할수록 상황은 오히려 악회될뿐이다.
감정 본부에서 버럭이와 까칠이 소심이가 우왕자왕하는 동안 이탈한 기쁨이와 슬픔이는 본부로 돌아가기 위해
고분분투한다. 라일리의 두뇌솏게ㅖ지만 감정들이 돌아다니는 그 세계는 우주보다 더 넓어서 기쁨이와 슬픔이가
이탈한 지역에서 본부까지는 지구와 달 만큼이나 까마득히 멀고 멀다. 그럼에도 기쁨인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내세워 어떻게든 본부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반면 자기 떄문에 라일리의 감정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슬픔이는
의욕이 없다.
슬픔이의 이러한 생각은 사실 기쁨이로부터 세뇌된 생각이다. 슬픈 감정은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
떄문에 슬픔이는 처음에는 기쁨이를 따라 본부로 가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나중에는 너는 라일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없다는 기쁨이의 말을 듣고 그 노력마저 포기한다. 기쁨이에게, 그리고 슬픔이에게 인간의 행복이란 오직 즐거운
감정만 이었던 것이다.
(출처:brunch_피아비키,인사이드아웃)